한국과 일본 두 나라에서 일본군 위안부 연구에 신기원을 마련한 두 권의 책 『반일종족주의』 (2019 미래사) 및 『반일종족주의와의 투쟁』 (2020 미래사) 출판을 주도한 이영훈 교수는 1937년 중일전쟁의 시작부터 1945년 태평양전쟁이 끝날 때까지 식민지 한국에서 운영된 ‘일본군 위안부 제도’는 그 이전 혹은 그 이후에 존재한 한국 역사의 ‘또 다른 위안부 제도’들과 본질적으로 전혀 다르지 않다고 주장한다. 조선시대의 기생제(妓生制), 1916년부터 식민지 한국에서 시행된 공창제, 1945년 해방 이후 존재해 온 미국군 위안부제 등과 마찬가지로 ‘일본군 위안부제’ 역시 공창제도의 하나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영훈 교수는 공창제는 모두 ‘국가, 남성, 가부장, 매춘업자’들이 암묵적으로 협력해 최하층의 가난한 여성을 성적으로 약취한 부도덕한 일이라고 고발한다. 사정이 이렇다면 당연히 등장해야 할 질문은 그 많은 공창제의 희생양들 중 왜 우리 국민은 유독 ‘일본군 위안부’에만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지원을 마다하지 않는가 하는 문제다. 다시 말 해 ‘일본군 위안부’의 ‘특권화’는 어디에서부터 비롯된 일인가?
물론 이영훈 교수의 답은 ‘반일 종족주의’다. 일본군을 대상으로 하는 위안부가 아닌 다른 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위안부는 ‘우리 안’의 위선과 모순을 동시에 인정하면서 이를 극복해야 하는 어려움을 주지만, 일본이 개입된 위안부 문제는 ‘우리 밖’의 적(敵)인 일본을 비난하기만 하면 ‘우리 안’의 문제를 손쉽게 잊게 해준다. 그래서 ‘반일 종족주의’는 ‘우리 안’의 위선과 모순을 덮어주는 일종의 ‘마약’과 같은 역할을 한다.
조선이라는 국가를 지배하던 왕과 양반의 위선(혹은 대한민국 지배집단의 위선), 가족을 지키지 못하는 남성 가부장의 위선,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여성의 가난을 이용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매춘업자의 부도덕에 정면으로 맞서지 않아도, ‘반일 종족주의’는 일본이라는 적을 비난하면서 그 모든 우리 안의 모순을 잊게 만든다. 그래서 이영훈 교수는 ‘반일 종족주의’라는 마약이 존재하는 한 대한민국은 한 발짝도 업그레이드 될 수 없다고 개탄한다.
사회에서 말살
이러한 분석과 함께 이영훈 교수는 한국인이 갖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제’에 관한 3가지 통념의 오류를 지적한다. 첫째는, 조선인 위안부의 숫자에 대한 통념이다. 현재 여성가족부 홈페이지는 그 숫자를 무려 20만 명이라고 추산하지만, 여러 가지 역사적 자료를 근거로 종합하면 약 3천 명에서 4천 명 정도라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고 정리한다.
둘째는, 민간 여성을 공권력이 ‘강제연행 내지 납치’했다는 통념이다. 이 통념이 확산되는 데는 다음 두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 하나는 요시다 세이지(吉田淸治) 가 1983년 일본에서 출판한 책 『나의 전쟁범죄』 가 허구의 강제연행설을 퍼뜨리며 한국에 넘어왔고, 또 다른 하나는 민간의 취업사기에 노출된 ‘위안부’와 일본 국가가 여성을 군수공장(軍需工場)으로 동원한 ‘정신대’를 혼동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영훈 교수는 위안부를 국가의 ‘강제연행’ 피해자가 아니라 민간 매춘업자의 ‘취업사기’ 피해자로 보아야 한다고 설명한다.
세 번째는, 위안부가 ‘성노예’라는 통념이다. 노예란 노동력을 사고파는 노동시장이 필요하지 않는 존재다. 쉽게 말해 돈을 내지 않고도 성노동을 시킬 수 있을 때 성노예라는 표현을 써야 한다. 전차금(前借金 마이낑)을 갚고 자유를 얻어 조선으로 돌아 온 위안부가 다수였음을 근거로 이영훈 교수는 이 통념도 허구라고 지적한다.
필자는 연세대 강의에서 바로 이와 같은 이영훈 교수의 연구성과를 설명하면서 일본군 위안부 제도를 ‘매춘의 일종’이라고 말했다가, 학생들로부터 괘씸죄에 걸려 엉뚱하게도 성희롱 문제를 이유로 정직 1개월의 ‘중징계’ 처분을 받았다.
필자는 학생들과의 질문답변 끝에 강의의 막바지에서 만약 일본군 위안부의 아픔에 대한 공감과 지지를 여러분이 갖고 있다면, 결코 비난의 대상을 과거의 일본에만 가두지 말고 지금 여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취업사기와 매춘에 대해서도 분노하고 같은 강도의 비난을 해야 하지 않겠냐고 강조했다. 왜 우리 안의 현재 모순에는 눈감고, 우리 밖의 과거 모순에는 그렇게 흥분하냐고 되물었다.
수업의 논란은 자연스럽게 일본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며 위안부 ‘장사’를 하는 정의기억연대의 활동에 대한 평가로 이어졌다. 학생들 대부분은 정의기억연대 편이었다. 급기야는 허락 없이 수업을 녹음한 파일이 외부 언론에 유출되더니, 이영훈 교수의 연구성과에 기반한 강의를 ‘토착왜구’(土着倭寇) 수준의 ‘역사왜곡’이라고 대서특필하기 시작했다.
언론 보도는 교수의 역사관 비난에 더해 운동권 학생회를 중심으로 문제가 제기된 성희롱 문제로 이어졌다. 학문의 자유를 최우선으로 보장해야 하는 대학에서 ‘반일 종족주의’에 반하는 강의를 한 교수를 골탕 먹이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성희롱’으로 문제를 끌고 가는 전략이다.
학생들은 엉뚱하게도 ‘궁금하면 (조사를) 해보라’는 수업에서의 발언을 ‘(매춘을) 해보라’는 발언으로 몰아 징계를 요구했고, 학교 당국은 결국 이를 수용했다.
‘반일종족주의’와 같은 비합리적 정서를 타파하고 ‘진리와 자유’를 탐구해야 할 대학이 그것도 대한민국 최고의 명문 사학(私學)이라고 스스로 자랑하는 연세대학이 어처구니없게도 바로 반일종족주의가 지배하는 현장이었다. 33년을 봉직한 교수가 겪고 있는 반일종족주의의 구체적 모습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