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독자에 첫 기고
일본 독자를 상대로 글을 쓰는 경험은 처음이다. 학술논문을 영어로 써서 혹은 동시통역을 통해 일본 학자들 앞에서 발표해 본 경험은 꽤 있다. 또한 일본 매체가 필자의 발언을 인용해 기사를 작성한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필자가 일본 대중 매체에 이번 같이 직접 글을 쓰는 방식으로 기고하는 것은 처음이다. 물론 번역을 통해서 지만.
그래서 매우 조심스럽다. 미묘한 한일관계의 현실에서 이 글이 한일관계를 더욱 악화시키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는 대한민국이 처한 국제적 현실에서 한·미·일 동맹을 유지 및 강화하는 과제가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이다. 북·중·러 동맹이 핵과 미사일로 무장하고 남쪽을 겨누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필자는 한국의 연세대에서 1987년부터 사회학 교수로 재직해 왔다. 만 65세 정년퇴직을 불과 3개월도 남겨놓지 않은 33년차 최고참 교수다. 강의와 연구로 평생을 이어왔고, 50세를 넘기면서부터는 대중매체를 통해 여러 가지 사회적·국가적 쟁점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고 또 그러한 쟁점을 중심으로 시민운동에 적극 나서기도 했다.
그 결과 한시적이긴 하지만 한국의 보수우파 정당에서 정치적인 역할을 맡기도 했다. 2017년 5월 한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당선자에게 패배한 홍준표 후보가 같은 해 7월 대표로 선출된 ‘자유한국당’에서 그해 12월까지 ‘혁신위원장’이란 직책을 수행했다. 그러나 2018년 4월의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이 참패하면서 이 일은 결국 아무런 보람도 얻지 못한 헛된 노력이 되었다.
교수라는 직업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학문적 성취는 물론이고 잠시나마 적극적인 역할을 모색했던 정치권 활동에 대한 평가는 당연히 한국 국민들의 몫이다. 반대자들은 고소하게 생각할 것이고, 지지자들은 아쉽게 생각할 터다. 자랑스러워 해주면 좋겠지만 그런 평가를 받기엔 스스로 생각해도 부족한 모습이 많은 사람이라는 자평도 한다.
그러나 세간(世間)에서 모자라고 부족한 사람이라 평가하고 나아가 스스로 그러한 평가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2019년 9월 19일 연세대 강의실에서 한 발언 때문에 징계를 받은 일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부당한 일이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일본 독자들에게 이 사건의 전말을 보고해, 한국의 일본에 대한 미묘한 정서 이른바 ‘반일종족주의’(反日種族主義)의 현실을 공유하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
자국의 현대사를 부끄러워 하는 청소년
2019년 가을 학기 문제가 된 필자의 강의는 ‘발전사회학’이었다. 이 강의는 사회학 전공 선택 과목으로 발전을 원하는 수많은 제3세계 국가들 가운데 왜 어떤 국가는 성공하고 왜 또 다른 국가는 실패하는 가를 수강생들과 같이 토론하고 분석하는 강의다. 한국은 예외적으로 성공한 경우라서 당연히 한국 사람들은 그러한 조국의 현대사를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한국의 젊은이들은 대한민국 현대사를 부끄럽게 생각하는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강의는 자연스럽게 ‘왜 그런 상황이 벌어지는 가’로 이어진다.
문제가 된 주(週)의 강의 주제는 ‘식민지배를 당한 경험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였다. 학계에서는 한편에서 그 시기를 ‘수탈’을 당한 시대라고 평가하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화’가 동시에 진행된 시기라는 해석도 공존하고 있음을 학생들에게 전했다. 또한 아래의 표를 중심으로 일본의 한국 지배가 다른 식민지 경험과 비교해 매우 독특한 상황이었음을 설명했다.
이 표를 통해 필자는 일본의 한국지배가 다른 식민지 경험과 비교할 때 식민 모국을 미워하지 않을 수 없는 최악의 조건이 결합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식민 지배를 받은 기간이 매우 짧아 긴 경우에 비해 저항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고, 역사·문화적으로 서로 잘 아는 사이에서 그런 일을 당해 더욱 더 억울하게 생각했고, 서양 열강과 비교하여 일본이라는 식민 모국은 산업화의 후발국이어서 조급한 심리를 가지고 있었으며, 피식민 사회와 식민 모국 사이에서 완충 역할을 해 줄 제3의 집단도 없어서, 두 민족은 식민지 현장에서 직접 부딪힐 수밖에 없는 최악의 조건이었음을 설명했다. 그래서 한국은 일본을 더욱 더 미워하지 않을 수 없는 유산을 가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출처: 류석춘, 2002, 『한국의 사회발전: 변혁운동과 지역주의』 (전통과현대), p.58. 식민지배의 기간에 대한 판단은 문헌에 따라 또 필자에 따라 기준을 달리 설정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