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시절에는 한동안 지하 공산당 활동을 하기도 했던 박성현(필명 ‘뱅모’) 뉴데일리 주필은 젊은 시절 일찌감치 사상 전향을 하고서 자유주의적 관점의 동북아문명사, 세계문명사 담론 개발과 확산을 위한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유튜브 ‘뱅모의 세뇌탈출’)
현 문재인 정권을 장악하고 있는 80년대 주사파 운동세력의 정체성은 ‘반미’이다. ‘반미’가 사실상 ‘반일’을 포함하기 때문에 ‘반일’을 표방하는 학생운동 세력은 존재할 필요가 없었다. 이들은 80년대부터 줄곧 미군 철수를 내세우며 반미 운동을 확산시켰다. 그 마지막 절정이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된 2002년 미군 장갑차 사고로 숨진 여중생 미선이 효순이 사건이었다. 이에 노무현의 당선은 바로 이 반미 흐름으로 가능했다는 분석도 있었다.
그러나 노무현 당선 이후 대한민국에서의 반미 정서는 급속히 퇴색한다. 2005년 반미세력을 기반으로 한 노무현 정권이 스스로 한미FTA를 추진하면서 반미세력에 균열이 생긴 것이다. 사실 노무현 대통령은 주사파 운동권과의 깊은 교류가 없었다. 개인적으로 좌파 성향은 있었으나 상고 출신으로 대학을 진학하지 않았고 20대 시절을 일반인들 속에서 보냈기에 운동권 사고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다. 따라서 이런 그의 경험이 급진좌파, 반미좌파보다는 실용적인 미국식 진보를 높이치는 친미좌파, 리버벌좌파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게 했었고 지지세력과 전혀 다른 결정을 내리게 한 것이다. 정권으로부터 소외된 반미세력은 동력이 약화되며, 한미FTA는 손쉽게 국회를 통과하게 되었다.
물론 2008년 이명박 정권 초기에 한미FTA의 부산물인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촛불 시위가 번지기는 했었다. 그러나 이는 반미라기 보다는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국민들의 과잉 반응 때문이었다. 실제로 이명박 정권은 30개월 이상 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정책을 발표했고, 촛불시위는 사그라들었다. 그뒤 미국산 쇠고기는 한국시장에서 50%가 넘는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고, 그 누구도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을 다시 지적하지는 않고 있다.
2010년 3월 26일에 백령도 해상에서 북한에 의한 천안함 피격 침몰 사건이 일어났고,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 피격 사건이 일어나자 국민들은 극도의 안보불안에 시달렸다. 이에 미국은 즉각 조지워싱턴 핵항공모함을 대한민국 서해에 파견, 한미연합훈련을 실시했다. 이에 피해 당사자인 백령도, 연평도 주민 등 다수의 국민들이 안도했다. 6.25 이후 사실상 처음으로 한미군사동맹의 힘을 체감한 것이다.
중국의 내해화가 이뤄지고 있는 서해에 미군의 항공모함이 계속해서 진입하고 있는 것은 중국과 북한에게 큰 억지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 지상파 방송사 ‘SBS 뉴스’)